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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이 구절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진정한 자아 즉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남이 정해준 삶이나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욕구와 본질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말한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

기록되어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맹신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정말 그런지
진리에 대한 열린 자세와 비판적 분석으로
성경을 연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미하게 들린다
들을귀 있는자는 들을 지어다~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아주 주의깊게
귀를 쫑긋하고 들으면 들린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니고데모처럼 속에 간사한것이 없고
마리아처럼 말씀에 대해 간절함이 있고
설명할수는 없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의외로 성경말씀이 들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요한복음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사람들이 처음에는 우물가 여인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지만 이후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임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성경을 배우고
그 배운것을 토대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수 있다
자라온 환경 , 지식수준 ,인생관 , 종교관 , 천성등에
영향을 받고 성경을 해석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관점이 똑 같을수는 없다

우리는 우선 전도자가 전하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전도인의 신앙이지
내 신앙은 아니다
환경.지식.여건.성격.조건.은사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전도자와 똑같은 형태의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신앙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환경과 은사에 맞는 신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인의 말씀을 듣는 것은
마치 운동 선수가 코치의 지도를 받는것과 같다
코치는 자기의 경험과 배운지식을 토대로
운동 선수를 훈련 시킨다
운동 선수는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반복된 훈련을 통해 자기의 체력과 재능에 맞추어
자기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코치가 필요하듯이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전도자가 필요하다

신앙은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
늘 성경을 꼼꼼히 연구해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대충 읽고 건성으로 듣고 커피값만큼이나 신경쓰지
않는다면 절대로 깊이있게 알수가 없다

신앙인들 대부분은 세상 지식을 가볍게 생각한다
성경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소설 철학 시집 수필등을 읽는것을 소홀히 한다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성경을 볼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궁금증도 생기고 질문도 할줄알게 되고
문해력이 좋아져서 성경도 올바로 해석할수 있다
의외로 교회 다니면서부터 편식을 한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해서 모든것을

해로 여긴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것 같다

나의 신앙관은 한국형 서구형 침례교형 감리교형이
아닌 성경형으로 살고자 한다
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으나
가능한 관습과 편견을 배제하도록 노력하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하여
예수님의 의도를 알고자 한다

목회자의 증거를 존중하나 사실여부는 베뢰아 사람처럼 스스로 연구한다
진리를 추구할때는 독립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결코 다른사람의 견해나
다른 사람이 쓴 책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세운  법칙들을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하면 그사람들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사람들이 조직을 통해서 정형화  표준화시킨
평균의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
조직은 인간의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정설처럼 된것에 도전하는게 쉽지않을뿐더러
주변으로부터 환영받지도 못하고 고립된다
진리를 찿는 사람은 고립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설령 자신이 틀릴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일반적인

통념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의심하여야 한다
의심하기위한 의심이 아니라
사실에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의심이다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은 필요하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고 말한 것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해석된 진리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내 내면에서 스스로 솟구쳐 오를 때까지
치열하게 상고하고 의심하며 탐구하는
바로 그것을 나의 신앙관 으로 삼고자 한다